“야, 연애하자.” 안부 묻듯 툭 던진 생활감 가득한 고백에 펜대를 기울이던 미도리야가 물음표를 띄웠다. 커다란 눈이 끔뻑끔뻑 하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곤 손가락으로 자길 가리킨다. “저요?” 한 번 말해서 알아듣질 못한다. 진짜 멍청한 새끼. 표정도 맹추 같아가지고. 눈썹을 꿈틀거린 시가라키는 들고 있던 컵을 내려두었다. 안에 들어있던 얼음들이 잘그락잘그락...
한 걸음, 바싹 다가온 가을에 공기가 쌀쌀했다. 팔뚝을 쓸어내리고 창문을 닫는다. 자신은 더위나 추위가 컨디션에 하등 문제없지만 미도리야는 아니니까. 시계를 한 번 보고 문간을 응시하자 양반은 아닌지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잠깐만.’ 잰걸음으로 걸어가 문을 여니, 샴푸 냄새가 훅 들어왔다. “미안. 좀 늦었지.” “아니, 괜찮아.” 종잡을 수 없게 푸...
1-1 https://yujung00.postype.com/post/928715 오래지 않아 복도 끝에 그림자가 맺혔다. 서서히 다가온 얼굴은 수틀리고 성이 나 있어. 미도리야는 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수가 시선을 준다. 이내 묵인한다. 바쿠고의 날카로운 성격은 센터 내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더군다나 지금은 예민했고. 잘못 건드렸다 화를 입느니 피하...
얼마 만에 만나는 걸까. 한 달인가, 두 달인가. 하루, 이틀, 사흘, 나흘. 하나하나 꼽아보다 제풀에 지쳐 포기하니 날짜관념이 안 잡힌다. 미도리야는 입술을 삐죽 거렸다. 이해는 해. 이해는. 당시 토도로키는 고등학교 3학년. 그것도 수험이 코앞인 수험생이었으니. 제가 다니던 학교로 들어온다 해서, 그러라 했더니 굳은 얼굴로 말하더라. ‘시험이 끝날 때까...
1 사고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났다. 섬광이 터지며 하얗게 물든 세상에, 살아남은 자들이 고개를 들었을 땐 멸망만 남았다. 절망 속에서도 삶은 끈질겼고, 생존자들은 삼삼오오 모였다. 그들은 거대한 군집을 이뤄, 세상의 기반이 되었다. 하나의 제국이 되었다. 이전엔 다양한 나라가 있었다지? 쓰는 말도 다르고 행동양식도 다른, 다양한 문화가. 어르신이 하는 말에 ...
「네 감정.」 미도리야는 눈을 뜬다. 꿈을 꾸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종 그러지. 미도리야는 유독 심할 뿐이다.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꿈을 꾼 날은 컨디션이 나쁘다. 피곤이 찌뿌듯하게 내려앉는다. 더 이상 자기도 힘들 것 같아 몸을 일으켰다. 현기증이 일었다. 그러고 보니 끼니를 때운 게 언제였더라. 바쿠고가 열쇠장이를 불러 ...
[미도리야, 주말에 시간 있어?] 전화기를 반대편으로 고쳐 든 미도리야가 입에 문 거품을 뱉고 달력을 보았다. 이번 주말은 시간이 날 것 같아. 칫솔을 문 채 우물우물 답하는 것이다. “괜찮을 것 같아. 왜?” [그럼 자주 만나는 카페에서 보자.] 입 안을 헹구고서 수건으로 문질렀다. “알겠어. 몇 시 쯤?” [오전에 보자. 11시 어때?] “응.” 전화를...
“네?” 미도리야는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되물어보았다. 직원은 몇 번이고 맞아. 진짜라니까. 기어이 들고 있던 일정표를 얼굴에 들이밀었다. 빨간 펜으로 쓴 「주목 받는 사이드 킥 <A시> 특집 인터뷰 - MBS 방송국」을 보며 붕어처럼 입을 뻐끔뻐끔 거렸다. “왜… 왜요?” 어렵사리 만든 말은 궁색했고 “왜냐고? 유명세를 탔잖아...
“으응…” 허리에 닿는 묵직한 손에 슬그머니 눈을 떴다. 초점이 잘 안 잡혀, 손등으로 문지르니 그것을 잡아 어깨를 다독여준다. 바싹 긴장한 몸이 느슨해져, 푸스스 웃고 앞을 보았다. “피곤해보이네.” 뺨을 쓸어내리고 속살거리듯 중얼거리자, 눈썹을 꿈틀하더니 꽉 끌어안는다. 자자는 뜻이네. 미도리야는 손을 들어 등허리 위에 올렸다. 얼마나 피곤했는지, 바로...
“캇쨩, 사랑니 났네?” 미도리야가 푸스스 웃으며 엉뚱한 소릴 했다. 한참 하품하던 바쿠고가 뭔 개소리냐며 언짢은 표정을 했다. 탁자에 팔을 기댄 미도리야는 자기 입에 손가락을 넣었다. 여기, 여기. 가리키지 않아도 알거든! 성을 내며 혀를 데굴데굴 굴렸다. 어금니 뒤쪽에 오돌토돌한 것이 느껴진다. 설마, 누워있는 거 아니겠지.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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